15년 만의 RPS 체계 전면 개편...예측 가능성·보급 책임성 높인 설계는 긍정적
500kW 미만 소규모 설비에 '대규모와 동일 상한가' 적용은 구조적 역차별
독-프 등 선진국처럼 소규모 분산전원 가치 인정한 '차등 우대가격' 신설해야
[산경e뉴스] 지난 15년 동안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견인해 온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2027년부터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는 경쟁입찰 기반의 계약시장 제도로 전면 일원화되어 진입하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과 질서 있는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서 이번 개편은, 시장의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고 장기적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며, 정부가 보다 책임성 있게 보급 목표를 견인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담긴 조치로 읽힌다.
이번 개편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기존 사업자에 대한 배려와 정책적 정합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가격 변동성이 극심했던 현물시장을 2029년까지 3년간 단계적으로 운영하며 전환시장을 통해 장기계약으로 흡수하고 이미 체결된 장기 매매계약을 안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방침은 시장에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 긍정적인 조치다.
아울러 과거 부지별 REC 가중치 제도의 정책적 취지를 계승하여 수상·영농형·건물 지붕 등 국토 효율적 입지와 국내 공급망 안보 기여도, 주민참여(햇빛·바람소득) 모델 등에 계약시장 내 우대가격을 부여하기로 한 점 역시 현장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낼 요소다.
특히,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매년 보급 목표에 맞춰 총 입찰물량이 전년 대비 증가하도록 5년 단위 계획을 제시하고 보급 의무 부여(발전공기업 등) 및 목표 관리 대상자 지정(대규모 민간 발전사 및 공공기관)을 통해 보급량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체계를 준비하고 있는 건 현장의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정부가 RPS 개편에 맞춰 기후부 장관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재생에너지 보급 혁신 TF’를 구성하고 기후부 재생에너지국에 ‘재생에너지 보급추진단’도 준비하는 것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진일보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RPS 개편안에는 현장 안착을 가로막을 수 있는 치명적인 독소 요소가 잠재해 있다.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소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정교한 설계는 현장에서 심각한 갈등과 양극화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소규모 재생에너지 시장의 보호와 지속 성장을 위한 안전판 마련이다.
이번 개편안은 500kW 미만 소규모 사업자를 위한 별도 트랙을 개설하면서도 일반 대규모 유틸리티 시장과 동일한 상한가 내에서 경쟁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자본력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조달 금리, 기자재 대량 구매력 등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열세에 놓인 소규모 사업자에게 대규모 프로젝트와 동일한 가격 상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명백한 구조적 불평등이자 역차별이다.
이 구조가 굳어진다면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은 대기업 및 해외 거대 자본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고 수많은 국내 소규모 주체들은 거대 자본의 하부 하청 구조로 종속되거나 시장에서 대거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통계는 명확한 사실을 증명한다.
국내 전체 재생에너지 보급량의 40% 이상을 100kW 미만 소형 태양광이 담당해 왔다. 전국 5만 9,021개소에 달하는 풀뿌리 소규모 발전소는 국내 보급 확대를 넘어 지역 일자리 창출, 주민 수용성 제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국민 공감대 확산 등 에너지 전환의 든든한 사회적 저변을 일궈왔다.
이러한 성과는 과거 소규모 사업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했던 '한국형 FIT'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외 선진국들의 제도 전환 경험 역시 우리에게 분명한 해법을 제시한다.
일찍이 경쟁입찰 및 계약시장으로 전환한 독일의 경우, 소규모 분산전원의 계통 및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여 일정 규모(통상 750kW 또는 1MW 이하) 설비에 대해서는 입찰 의무를 면제하고 고정가격 체계나 차등화된 보조 메커니즘을 병행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들 역시 소규모 프로젝트에 한해 일반 경쟁입찰보다 우호적인 기준가격을 설정하거나 별도의 지원 트랙을 둠으로써 대자본 중심의 시장 독식을 방지하고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를 확고히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2027년 출범할 우리 계약시장에서도 500kW 이하 소규모 시장에 대해 일반 유틸리티 시장보다 상한가격을 현실적으로 높게 책정하는 ‘합리적 우대가격 체계’가 반드시 신설되어야 한다.
이는 특정 집단을 위한 시혜성 특혜가 아니며,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분산에너지를 지키고 지속 가능한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동반성장 정책이다.
에너지 전환과 2050 넷제로(Net-Zero)의 여정은 소수의 거대 자본과 공기업의 힘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지역과 주민, 풀뿌리 중소 발전사업자가 다층적으로 결합된 튼튼한 산업 생태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추진력을 얻는다.
2027년 새롭게 닻을 올리는 재생에너지 계약시장이 소외 없는 공정 경쟁과 실용적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는 국가 에너지 대전환의 진정한 마중물로 안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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